4) 인적 연망을 보여주는 자료들 ?
15 직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창립된 조선학술원의 전후 사정, 재건파 조선공산당의 결집 과정, 친일파에 대한 여운형의 대응 양태, 모스크바삼상회의 관련 오보와 이에 대한 민족건양회의 대응 등에 대한 서술이 그것이다. 한편 문중 조직과 관련된 자료도 있는데, 聞韶花會라는 계회와 관련된 절목 2점이 그것이다. 부산 주변과 관련된 다음과 문서들도 포함되어 있다: 8군 전투 효율성 지침(1949) 27보병연대 연례 부대 역사(1949), 8군 훈련연습(1950) 및 27보병사령부 전투 효율성 보고서(1950). 이 컬렉션은 유럽전역(1944-1945) 내 28보병사단에 대한 기사, 1896년 John Fairchild의 하버드 졸업 기사, 2차대전기 유럽 지도, 전시 병역 관련 정보를 위한 요청, 1947년 Bradley 장군으로부터의 감사 편지, 한국으로부터의 서한, 2차대전에 대한 여러 출판물, 108야전포병대대의 역사 요약, 한국전쟁의 발발을 다룬 기사, 1940년 뉴욕 1군 훈련 기동의 설명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RG 550 문서군은 한국전쟁 기간 중 한국군에 대한 가장 상세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집안의 자료를 수집하려 했지만 이미 서울역사박물관과 대구카톨릭대학교 등 각 기관에 자료를 이관하여 책으로 발간한 상태였다. 이 집안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다음과 같은 전쟁 및 시기를 아우르는 정보를 포함한다: 1차대전, 2차대전. -다음과 같은 군 부대와 조직을 아우르는 정보를 포함한다: 1장갑사단, 20장갑사단, 1차대전기 3사단, 6보병사단. – 이 컬렉션은 1차대전기 장군 시절부터 1953년 그의 퇴임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다음과 같은 전쟁 및 시기를 아우르는 정보를 포함한다: 한국전쟁,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다음과 같은 군 부대와 조직을 아우르는 정보를 포함한다: 369해병대합동공병연대, 한국군사고문단, 351민사사령부, 445군정중대, 예비군총장, 예비군정책이사회 군 이사. 1) 다음과 같은 자료의 유형을 포함한다: 서한, 인사 서류, 상장/증명서, 조직상의 서류, 부대 역사, 클리핑, 신문, 보고서/연구, 일기/저널, 브리핑, 연설문, 그가 작성한 기사. 즉 다음과 같이 1908년ㆍ1909년ㆍ1910년 시헌력의 여백에 메모를 해놓은 책력일기 3권과 辛亥(1911년), 癸丑(1913년)의 일기를 함께 묶어놓은 것이 남아있다. 특히 Box 4, Korean Combat Lesson 파일에는 한국전쟁 중에 관찰된 전투와 이를 보완하기 위한 Training 팜플렛이 비교적 자세하게 보관되어 있다. Box 1에는 이 사람이 한국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직책에서 근무했을 때인 1951년과 1958년에 부인에게 쓴 편지의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Series I의 Box 1, 2, 3, 4에는 Research Materials라고 명명되었는데, 여기에는 저서의 초고와 두 번째 원고, 그리고 각종 수정, 오류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2)The Uzal E. Ent Collection은 그가 1950년 7, 8, 9월의 부산 방어선을 다룬 자신의 저서 Fighting on the Brink: Defense of the Pusan Perimeter를 작성하면서 사용하고 준비한 기본 Manuscript와 관련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RG 57 : Records of the U.S. RG 550: Records of the U.S. Record Group 550: Records of the U.S.
1)이 컬렉션은 그의 책 “FIGHTING ON THE BRINK : DEFENSE OF THE PUSAN PERIMETER”을 위한 연구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The Orlando W. Ward Papers의 Box 5에 집중적으로 보관된 한국관련 자료의 핵심은 주둔 미군이 한국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종 문제점과, 이에 대한 미국 정부, 미국 육군, 극동군 사령부, 주한 미 군정청 사이의 갈등과 혼란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천오피 자료는 그 내용상 특별한 것은 없으나, 이미 역사가들에 의해서 조명된 바 있는 한국전쟁 이전의 남북의 국경충돌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물론, 이에 대한 KMAG 담당자의 분석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자료이다. 물론 생활통지표와 같은 관련 자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일괄자료로서의 가치가 반감되나, 최근의 자료에 속하므로 다른 자료 등이 보완되거나 또는 면접조사 등을 통하여 자료를 추가하면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3개군의 산림조합에서 113건에 2,537장을 자료수집 되었는데 이는 근현대 산림산업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龜岡書院의 자료는 通文, 明文, 考往錄, 執事記, 尋遠錄 등 成冊類 자료이며 마지막으로 留鄕所 관련 자료는 關文, 立議 , 完議, 稟目, 書目 등과 成冊類의 자료가 있다. 『論山敎育區金庫事務取扱條例』 등은 1950년대 중․
고종 6년(1869) 부임한 朴愼永이 성묘에 배알한 후 탄식을 금치 않았으며 월급을 내어 고을에 나누어주고 봄가을에 存本取利하여 奉享의 자본으로 이식하도록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노성군으로 승격되어 公州府에 속하였다가, 1914년 군을 폐하고 소사면은 부여군에, 그 나머지는 논산군에 병합하였다. 이 사료군은 에모리 대학 소장 조지 오글 목사 관련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Box 22와 23에는 저서에 사용한 사진 자료들이 들어있는데, 이 중에는 한국전쟁 이전의 미군의 활동과 한국전쟁 초기 전투의 장면들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자료로 판단된다. 그는 인천지역 도시산업선교회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한 활동과 인혁당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임을 세상에 알린 후 이로 인해 한국에서 추방당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망 등으로 인해 대리자를 세운 경우에는 逃代者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후기 각 향교가 소유한 토지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지방관의 보조나 유림들의 모금 등 다양한 방법으로 토지를 매입한 경우는 규정 이상의 토지를 보유하는 반면, 토지를 팔아먹는 등으로 국가에서 지급한 토지를 유지하지 못하여 규정에 미달하는 토지를 보유한 향교도 있었다. 해인사의 근대학교 운영은 이후 해인초등학교(현재 공립), 해인중학교(사립), 해인대학교(현 경남대학교) 등으로 이어졌다. 1949-1953년 군사연구실장으로 지낸 기간과 남한 점령기, 2차대전 이후 시기의 많은 연설문과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RG 407 부관부 문서와 RG 554 극동군사령부, 연합군최고사령관 및 유엔군사령부 문서 등 다른 문서군에도 상당수의 미 8군 관련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1957년 7월 1일 미 극동군사령부(US Far East Command)가 해체되고 이를 태평양사령부가 흡수했기 때문에 1957년 이전 자료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NARA 소장 자료들이 RG 550으로 분류되어 있다.